시 글 말

[실패의 장소] 김소연

조수진 josujin 2022. 4. 16. 19:32

실패의 장소

 

- 김소연

 

 

우리가 만난 곳을 생각해

내가 기대어 한숨을 쉬었던 그 벽에서

너는 두 손을 모아 균열에 대고 소원을 말했지

 

나는 오후 세 시에

너는 새벽 세 시에

 

꽃잎을 먹었어요

어차피 더럽게 떨어질 꽃잎이라서요

이렇게 많이 먹었는데 왜 배가 고플까요

 

언 귀를 비빌 때마다 우리가 만난 곳을 자주 생각해

악몽을 피처럼 낭자하게 흘리며 네가 쪽잠을 자던

알 깨진 가로등 같은 몰골로 내가 마중을 나갔던 골목

 

오늘만 좀 재워주세요

기린과 코끼리와 들쥐 그리고 화분 한 개

내 짐은 이게 전부예요

 

새벽 세 시의 네가

오후 세 시의 나를

 

찾아왔던 날을 자꾸자꾸 생각해

언 발을 나무처럼 심어두고 싶었지만

어쩐지 흙에게 미안해서 그만두었어요

 

쓰러져 누운 모든 것들이

이불로 보이던 그 동네를 생각해

쓰러지며 발열하는 별 하나와 불빛 없는 상점들

 

같은 악몽을 사이좋게 꾸던

같은 소원을 사이좋게 버리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