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말

[초승달] 나희덕

조수진 josujin 2019. 11. 15. 03:25

오스트리아 마을에서
그곳 시인들과 저녁을 먹고
보리수 곁을 지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등 뒤에서 어떤 손이 내 어깨를 감싸쥐었다
나는 그 말을 알아들었다
그가 몸을 돌려준 방향으로 하늘을 보니
산맥 위에 초승달이 떠 있었다
달 저편에 내가 두고 온 세계가 환히 보였다
 
그 후로 초승달을 볼 때마다
어깨에 가만히 와 얹히는 손 있다
 
저 맑고 여윈 빛을 보라고
달 저편에서 말을 건네는 손
다시 잡을 수 없음으로 아직 따뜻한 손
 
굽은 손등 말고는 제 몸을 보여주지 않는 초승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