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글 말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진중권

조수진 josujin 2019. 11. 15. 00:50

꽃불 속에서 예술과 기술은 하나가 된다.
화가가 물감을 짜서 색의 향연을 펼친다면,
꽃불의 기술자는 화학 물질을 태워 빛의 웅장함을 연출한다.
 
스트론튬은 빨강, 세슘은 파랑, 나트륨은 노랑, 칼슘은 주황,
칼륨은 보라, 알루미늄은 작열하는 은빛.
예술가가 최고의 효과를 내는 색의 배합을 고민하듯이,
꽃불의 기술자도 시각 효과를 극대화하는 성분의 배합을 찾아내려 고심한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그림의 색채가 반사된 빛인 데 반해,

불꽃놀이는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라는 것이다.
 
똑같은 폭죽이라도 어떤 순서로, 어떤 시차로 터뜨리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게다.

이 때문에 불꽃놀이에도 모종의 연출이 필요하다.

게다가 꽃불에는 공중에서 터지는 것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종류도 엄청나게 다양하다.

꽃불의 기술자는 터뜨릴 꽃불의 종류를 선택하고,

선택된 것들을 효과적으로 배합하여 하나의 연주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는 지휘자와 비슷한 능력이 필요하다.
이미 바로크시대에 불꽃놀이는 거대한 연극이었고,
야외 음악회와 결합되어 있지 않았던가.
 
"순간을 향해 말하노니, 멈추어라. 너는 너무나 아름답도다."
불꽃놀이를 볼 때면 누구나 파우스트의 심정이 된다.
꽃불들을 스러지기 직전에 하늘에 붙들어 둔다면, 밤하늘은 늘 아름다울 것이다.
하지만 꽃불의 매력은 만개하는 순간에 곧바로 스러지는 데서 오는 것.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는  불꽃놀이를 현현(apparition),
즉 인간 앞에 신이 섬광처럼 나타나는 신비체험에 비유한다.
손으로 잡을 수 없게 섬광처럼 스쳐지나가는 것은 예술의 진리도 마찬가지.
그리하여 불꽃놀이는 그의 말대로 예술의 원형인지도 모른다.